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念頭

삼촌


나는 또래보다 일찍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정치권이나 한국 근현대사에 특히 관심이 많았는데 삼촌에게 영향을 받은 게 크다. 삼촌은 대학시절 화염병 좀 던져봤댄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어릴 때 삼촌 방에 있던 여러 인문학, 사회학 서적을 집에 가져와 읽으면서 커진 것 같다. 신문을 읽는 것만으로 알 수 없는 지난 정권들의 과오와 정치인들의 행적 가십 등을 삼촌한테 듣는 걸 늘 좋아했다. 삼촌은 정치 얘기가 잘 통하는 몇 없는 어른이자 친구였다.


한 번도 삼촌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적이 없었는데, 메갈리아의 미러링이 대두된 후 논쟁을 벌이게 됐다. 삼촌은 ‘착한 페미니즘’을 말했다. 남자 동기와 얘기할 때의 논리와 똑같았다. 답답했고 조금은 놀랐다. 예전 같으면 삼촌에게 배우는 입장이었는데  처음으로 내가 더 말을 많이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삼촌과 나 사이에 페미니즘은 금기어가 됐다. 친구들과 여러 번 얘기해봤지만 ‘성별’의 차이로 허물 수 없는 벽이 항상 느껴졌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토론해도 묘하게 사이가 틀어지고 선입견을 갖는 걸 느꼈다. 삼촌과도 그러고 싶진 않았다.


지난 명절, 삼촌이 우리집에 다녀갔다. 읽을 책 좀 있냐고 하시기에 너무 좋아서 처분하지 못했던 책을 십여 권 건넸다. 그중엔 페미니즘 책도 있었다. 사실 말이 페미니즘이지 여성으로서 사회가 주입한 콤플렉스에 대해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남성에 대한 적대적 맥락은 어디에도 없었다. 삼촌 말대로 어쩌면 ‘착한 페미니즘’이었다. 내가 드린 책들의 제목을 살피던 삼촌은, 그 책 앞에서 말했다. “너 너무 페미니즘 이런 거에 빠지지 마라. 워마드 그거 안 좋은 거다.” 황당했다. 페미니즘=워마드라는 공식은 대체 어디서 시작된 걸까. 삼촌께 그건 여성 인권에 대한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페미니즘을 아는 게, 여성 인권에 대한 글을 읽는 게 어떻게 워마드로 귀결되냐고 반박했다. 기분이 나빴다. 남성 인권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일베’가 아니듯 여성 인권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워마드’가 아니다.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고 사회 부조리에 성토를 하던 삼촌마저도 성차대결로 페미니즘을 바라보고 ‘미러링’ 너머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삼촌과 긁어부스럼을 만들고 싶진 않았지만 끝까지 얘기했다. 동생 말로는 흥분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적당히 잘 말했다고 하는데 나의 차분한 태도는 사실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삼촌과 짧은 논쟁을 하고 난 이후 내내 그 일이 생각난다.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무력한 마음이 들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