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꾸준히 보게 된 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다. 처음으로 기숙사생활을 했는데 룸메이트들과 각기 다른 신문을 구독했다. 대표 보수지 둘, 진보지 둘로 아침에 일어나면 마음에 드는 신문을 골라 나갔다. 머리 말리기도 정신 없던 때라, 신문을 고르는 판단 기준은 오로지 '1면'이었다. 같은 사건도 표제어가 달랐고 사진도 달라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한동안은 그렇게 겉장만 보고 신문을 고르다 어느 순간엔 한 신문에 정착하게 됐다. 신문 읽기에 제법 재미를 느꼈던 무렵이었던 것 같다. 마음에 드는 '논조'를 만난 것이다.
신문을 꾸준히 읽어온 덕에 언론고시 준비는 힘들지 않았다. 다만 스터디를 하면서 납득하기 어려웠던 건, 각 신문사의 논조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스터디에 들어가도 기계적으로 대표 신문을 배정했다. 고등학생 때처럼 맘에 드는 대로 읽어내려갈 수 없어 답답했다. 어떤 언론사의 논조는 '사실'이 아닌 '날조'로 확신했지만 한 언론사의 신문을 오래 읽어온 내 뻗뻗함 때문이라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언시생의 기본인 신문 스터디를 관두게 되는 일이 생겼다. 복권방 신문가판대에서였다. 그날은 북한의 도발로 각 신문사의 1면이 일제히 통신사의 포격 사진으로 전재된 날이었다. 신문사에 따라 포격 장면이 재난영화의 한 장면 내지는 지구종말의 날처럼 연출된 것을 보았다. 곧 한 미디어 비평지에 3개 언론사가 이미지를 조작했다는 기사가 떴다. 당시 판매부수 톱3였던 언론사들은 포격으로 인한 연기를 짙게 리터칭했다.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불신하는 언론을 보지 않게 됐다. 논조의 다양성에 '조작'이 들어가지 않음을 확신하게 됐다.
1면 이미지만으로 호도될 계제는 아니었지만, 1면을 의도적으로 피하게 되는 일은 더 있었다. 신문사에서 편집 일을 할 때였다. 계약직이었던 나는 1면과 마지막 사설을 제외하고서 모든 면을 교열했다. 1면과 사설을 내게 맡기지 않은 이유는 데스크가 원하는 방향성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매일 신문을 샅샅이 보면서도 정작 그 신문사의 대표 의견은 알지 못했는데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오피니언 면에는 비교적 다양한 생각이 올려져도 사설만은 결이 다르고 확실했고, 대개 2~4면으로 이어지는 톱뉴스의 내용은 구체적이고 중립적이었지만 1면의 후킹은 자극적이며 단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세상 돌아가는 일을 즐겨본다. 요즘은 종이신문이 아니라 잡지를 더 즐겨보고, 인터넷 포털의 메인에서 뉴스를 찾기보다 언론사 사이트를 직접 찾는다. 좋은 언론사를 고르는 기준은 헤드라인이 얼마나 명료하느냐이다. 예를 들어 허핑턴 포스트는 '주어가 목적어를 동사했다'는 식의 정확한 제목을 달아 골라보기 좋다. 즐겨찾는 북마크에는 기성 신문사보다 시사블로그, 잡지, 웹언론이 더 많다. 1면의 스펙타클이 아닌 사회 여러 면의 스펙트럼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요즘도 신문 가판대를 지날 때마다 1면을 주의 깊게 보는데, 과격한 한 문장과 의도가 담긴 사진으로 맥락을 호도하는 걸 목격한다. 내가 신문 1면, 포털 대문을 찾아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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