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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완벽한 아이 프롤로그를 읽었음에도 실화라고 생각지 못하고 읽어내려갔다. 실화인 척하는 소설이어야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드가 언제 복수할지 페이지를 넘기며 기대하며 넘어갔다. 마치 장르물에서 반전 포인트를 기다리듯이. 속시원한 복수는 없지만, 절망적이고 억압적인 상황에서 모드의 성장이 가슴 아프고 또 대견하게 다가왔다. 모드를 구원한 동물들과 책, 그리고 음악 선생님이 없었다면 탈출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처절한 복수가 없는 것에 실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현실은 현실이다 싶어, 그 모든 결박과 모멸을 이겨낸 주인공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 어떤 강제적 환경에서도 '존엄성'을 결코 잃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아르튀르의 죽음에 린다가 슬퍼하고 린다의 죽음에 페리소가 슬퍼하는 그 .. 더보기
살고 싶다는 농담 시니컬하다. 염세적이다. 종종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 영화를 좋아한다. 매체나 글을 통해 허지웅을 보면서 느꼈던 공통점이다. 물론 나와 다른 점도 아주 많지만, 젊은이들 중 어떤 파이가 가지고 있는 비슷한 '까칠함'을 갖고 있다 여겼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공감 가고, 정곡을 찔리는 데가 더러 있었다. 세상에 불만이 많은 동시에 자기 혐오도 가지고 있다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이 책은 허지웅이 혈액암을 겪는 중에, 겪고 나서의 상념들에 대해 기술한다. 병이라는 큰 변화를 겪고 그는 조금 말랑해지고 어떤 부분에선 조금 더 뚜렷해졌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을 강권하며, 사회에서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쓰는 것에 대해 긍정한다. '나때는 말야~' '내가 해봐서 아는데' 류의 젊은 꼰대 글이라고 볼 수도.. 더보기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평등이 불편합니다 / 마리 루티 한 8년 전쯤? 진화심리학에 관심을 갖던 때가 있었다. 인간의 본성과 행동의 원인에 대해 말하는 신화, 인류학, 종교학, 뇌과학을 좋아할 때였다. 데이비드 버스의 도 그즈음 읽었다. 남녀의 본성에 관한 부분은 특히나 재밌는 부분이었다. 당시에도 화성남금성녀류의 이론이나 설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동물의 짝짓기 본능'을 방패삼은 이야기들은 연애에 관심이 많던 내게 큰 흥밋거리였다. 다만, 흥밋거리였을 뿐 믿지는 않았고 계속해서 불편한 마음이 커갔는데, 이 책이 그 불편함을 많이 해소해주었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이 말하는 생물학적 본능이라는 것이 얼마나 적은 표본과 허술한 통계로 이루어진 것인지, 그리고 그 연구의 배경엔 남성 연구자들의 뿌리 깊은 '성적 본능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음을 시원한 어조로 비.. 더보기
젤다_ 2020년에 읽는 1920년의 젤다 젤다 _ 젤다 피츠제럴드 1920년대 젤다의 생과 토로, 그 기록은 처절하지도 감동적이지도 않다. 다만 2020년의 ‘젤다’들과 어쩌면 다를 바 없는 이야기들을 한다는 데서 먹먹하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뒤에서 사치와 향락의 여인으로 입방아에 오르고 ‘뮤즈’로 포장됐던 젤다. 문장이 유려하거나 플롯이 알차진 않다. 다만 그녀 자체의 매력과 그 아우라는 당대의 주목과 사랑을 받기 부족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 시대에 태어났으면 인플루언서로 큰 사랑을 받을 느낌이라 해야 할까. 단편소설은 실망스러웠고, 산문은 애처로웠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이의 기록, 자의식 과잉과 조울 사이를 오가는 잡히지 않는 공허가 100년을 넘어 닿았다. 어쩌면 ‘실존’에서 비롯되는 ‘허무’는 한 세기쯤은 지나야 그 까닭을 찾을 수.. 더보기
읽고 있는 책,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 저자 서문 - 탐구 결과, 문명의 차이는 개인의 차이에서가 아니라 사회조직의 차이에서 생긴다는 점, 진보는 언제나 어울림에 의해 촉발되었다가 언제나 불평등이 커짐으로써 퇴보로 바뀐다는 점, 지금도 현대 문명 속에 과거의 모든 문명을 파괴했던 원인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점, 정치적 민주주의만으로는 무정부 상태와 전제정치로 빠지게 된다는 점이 나타난다. / 19 ✓ 하나하나 다 크게 공감한다. ‘진보는 어울림에 의해 촉발되고 불평등이 커져 퇴보로 바뀐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사분오열하다가 또 붙고 하는 게 역사의 걸음이다. 여기에 희망과 염세가 있다. - 문제의 제기 - 지금까지 실망이 거듭된 것은 사실이다. 꼬리를 무는 발견과 발명도 휴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계층의 고된 일을 덜어 주지 않았고 빈민에게.. 더보기
읽고 있는 책,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생각 정리 중 부자들은 새끼 양을 사육하듯 송아지를 사육할 생각이 없고, 그 대신 비쩍 마른 송아지를 헐값에 구입하여 자기 목장에서 비육한 후 고가에 팝니다. 이 나쁜 관행의 영향이 아직은 총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 38 => 현재는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자본주의의 관행을 ‘나쁜 관행’이라 짚은 모어의 혜안이 돋보인다. 억만장자와 억만빈자의 세상에서 자원과 자본의 집중은 공멸이거늘, 6세기가 지난 현재도 이 문제는 현재진행중이다. 곡물 값이 오르면 부자들은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시종을 해고할 터인데, 그렇게 해고된 시종들이 도둑질이나 구걸 이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구걸보다는 도둑질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39 => 시종일관 온화한 어조이지만 사실 모어.. 더보기
읽고 있는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아직 1장까지밖에 못 읽었으나 드는 생각이 많아 기록해 본다.. => 대략의 내용은 알고 있고, 글이나 말에서도 많이 인용하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제대로 알아갈 수 있다는 설렘이 있었다. 아직 초반에 불과하지만 내 멋대로 축소해 해석한 바가 있다고 보인다. 전후 독일의 나치 청산 문제와 이스라엘과 독일의 외교적 문제,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 움직임 등 행간에서 읽어야 할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언뜻 보인다. 이 악행은 악행자의 어떤 특정한 약점이나 병리학적 측면, 또는 이데올로기적 확신으로 그 근원을 따질 수 없는 것으로,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정은 아마도 특별한 정도의 천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또.. 더보기
이번주에 읽은 책 1.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 미래에 누가 이 쇠창살 안에 갇혀서 살아가게 될 것인지, 그리고 이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발전이 끝나갈 무렵에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새로운 예언자들이 출현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옛 사상과 이상이 다시 부활하여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인지, 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자포자기 상태에서 극도의 자존감으로 장식된 기계적이고 화석화된 인류가 출현하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만일 화석화된 인류가 출현하게 된다면, 인류의 이러한 기나긴 문화 발전의 과정에서 “인류의 마지막 단계에 선 최후의 인간들”인 “마지막 인류”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이 참이 될 것이다. “혼이 없는 전문가들, 심장이 없이 향락을 추구하는 자들 - 이 무가치한 인간 군상들은 인류.. 더보기
그레이스 / 마거릿 애트우드 / 민음사 (2019.03.01) “성서에서는 ‘나무들’이라고 하지 않아요. ‘생명의 나무’와 ‘선악과 나무’, 이렇게 두 개의 다른 나무가 있다고만 하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나무가 한 그루뿐이고 생명 나무 열매와 선악과가 같은 거예요. 그리고 그걸 먹으면 죽지만, 먹지 않아도 죽긴 마찬가지예요. 그걸 먹으면 좀 더 유식해져서 죽는 거죠.” 668쪽, 그레이스가 사이먼 박사에게 보낸 편지 중 1년 전쯤인가, 넷플릭스 폐인일 때 를 보았다. 건조한 연출 속에 배우의 눈빛과 묘한 남녀 배우간의 긴장감이 인상적이었다. 잠깐 넷플릭스를 쉬었다가 얼마전 다시 시작하면서 드라마를 이어보지 않고 원작인 책을 집은 건 느리지만 무거운 전개의 행간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700페이지나 된다. 처음에는 드라마를 볼 때처럼 약간은 .. 더보기
최근 읽은 책 : 고민하는 힘 / 개미제국의 발견 / 타자와 나, 숨겨진 진실 / 침묵의 봄 고민하는 힘 / 강상중 / 사계절 (2019.02.15) “‘자기중심주의자’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적고 ‘자기중심주의자’라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자기중심주의자’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지만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대개 ‘타자’의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때문이겠지요. “ 재일교포 2세인 저자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준 통찰을 토대로 삶에 대해 고민할 주제를 ‘던져주는’ 책이다. 말 그대로 ‘던진다’. ‘고민하는 힘’의 효용에 대해 소세키나 베버를 통해 설득하는 것도 아니고 몇 가지 굵직한 카테고리 ‘죽음’ ‘사랑’ ‘노동’ 등에 대해서 그들의 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