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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그레이스 / 마거릿 애트우드 / 민음사 (2019.03.01)


“성서에서는 ‘나무들’이라고 하지 않아요. ‘생명의 나무’와 ‘선악과 나무’, 이렇게 두 개의 다른 나무가 있다고만 하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나무가 한 그루뿐이고 생명 나무 열매와 선악과가 같은 거예요. 그리고 그걸 먹으면 죽지만, 먹지 않아도 죽긴 마찬가지예요. 그걸 먹으면 좀 더 유식해져서 죽는 거죠.” 668쪽, 그레이스가 사이먼 박사에게 보낸 편지 중


1년 전쯤인가, 넷플릭스 폐인일 때 <그레이스>를 보았다. 건조한 연출 속에 배우의 눈빛과 묘한 남녀 배우간의 긴장감이 인상적이었다. 잠깐 넷플릭스를 쉬었다가 얼마전 다시 시작하면서 드라마를 이어보지 않고 원작인 책을 집은 건 느리지만 무거운 전개의 행간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700페이지나 된다. 처음에는 드라마를 볼 때처럼 약간은 침착하게 인내심을 갖고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후반에는 나도 모르게 사이먼 박사처럼 그레이스에게 빨려들었다. 드라마를 1~3회 정도 보고 책을 읽기를 권하는 이유다.


이 작품은 실화이지만 열린 결말이다. 실제 사건이 그렇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실화라는 걸 잊고 ‘로버트 브라우닝’ ‘너새니얼 호손’과 같은 이름이 인용되어 의문을 가졌을 정도로 심리스릴러 혹은 시대극으로서 모자람이 없다. 이야기는 대부분이 그레이스란 주인공의 상담 내용으로 진행되고 몇몇 서신으로 채워지는데 그것만으로 아주 훌륭한 스릴러다.


이 이야기의 골자는 그레이스가 살인범이냐 아니냐인데, 나 역시 어느 부분에서는 살인범으로 치를 떨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너무 가엾게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다 읽은 후 어느 정도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는 했으나 그것을 밝히기 어려울 정도로 그레이스는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안타까운 인물이다. 스토리상으로 그녀는 악녀여야 완벽하다. 한편 그녀가 성녀인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떠나 그녀는 ‘하녀’이다. 19세기 북미에서 ‘하녀’란 조건은 그녀를 아무렇게나 제멋대로 해석하고 취급하는 바탕이 된다. 현재와는 판이하게 배경이 다르지만 최근의 미투운동과 2차가해를 생각했을 때 여론 재판을 여는 사람들의 심리는 당시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종국에 이를수록 그레이스가 성녀이냐 악녀이냐 보다 그 시절 ‘하녀의 삶’과 사회 분위기, 위선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덧붙여 번역된 책을 읽고 문장 맛을 느끼가 어려운데 이 책은 심리 묘사를 아주 건조하게 아주 정나미 떨어지게(?) sarcastic하게 잘 그려낸다. 소설 읽는 맛을 간만에 제대로 느꼈다. 강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