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컬하다. 염세적이다. 종종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 영화를 좋아한다.
매체나 글을 통해 허지웅을 보면서 느꼈던 공통점이다. 물론 나와 다른 점도 아주 많지만, 젊은이들 중 어떤 파이가 가지고 있는 비슷한 '까칠함'을 갖고 있다 여겼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공감 가고, 정곡을 찔리는 데가 더러 있었다. 세상에 불만이 많은 동시에 자기 혐오도 가지고 있다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이 책은 허지웅이 혈액암을 겪는 중에, 겪고 나서의 상념들에 대해 기술한다. 병이라는 큰 변화를 겪고 그는 조금 말랑해지고 어떤 부분에선 조금 더 뚜렷해졌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을 강권하며, 사회에서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쓰는 것에 대해 긍정한다. '나때는 말야~' '내가 해봐서 아는데' 류의 젊은 꼰대 글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치만 담백하고 명확한 문장이 '라떼론'을 설득하고 불쾌하지 않게 한다. 짧게 치는 문장의 미덕이 그 행간의 솔직함을 무기로 배가되는, 허지웅다운 글이다. 중간중간 예로 드는 본인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영화와 책에 대한 감상과 인용도 좋다.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해석은 이해할 수 없었던 미시마 유키오를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게 해주었고, 니체에 대한 해석도 좀 더 인간적으로 니체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다만, 원래 그의 트위터글이나 말을 접했던 사람이라면 '중언'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몇몇 꼭지는 전에 씨네21이나 트위터 또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글과 똑 닮아 있어 약간의 지루함으로 내키지 않는 반복을 해야 했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보며, 나도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허지웅처럼 레퍼런스를 명확하게 예를 들며 말하긴 힘들지만, 그처럼 생각의 파고가 너울대는 사람이라... 더욱이 회사 생활에 있어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지혜'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에 대해 고민과 시도를 하고 있어서 지금의 혼잡한 결심과 후회들을 기록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덧붙여, 사람은 '죽음'의 문턱에 다다를 때, 가까운 '죽음'을 목도할 때 한 겹의 알을 깨고 나아가는 것 같다. 아니 때론 한 겹의 막으로 더 싸매는지도.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더라도 무언가의 소멸, 배신을 접할 때 말이다. 아직도 꼿꼿한 반골기질이 맴도는 나로서는 이건 극기가 아니라 포기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여전히 들기도 하는데... 모르겠다. 좀 더 살아봐야겠다.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벽한 아이 (0) | 2020.12.27 |
---|---|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평등이 불편합니다 / 마리 루티 (0) | 2020.01.26 |
젤다_ 2020년에 읽는 1920년의 젤다 (0) | 2020.01.16 |
읽고 있는 책,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0) | 2019.04.22 |
읽고 있는 책,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생각 정리 중 (0) | 2019.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