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빈곤>
- 저자 서문 -
탐구 결과, 문명의 차이는 개인의 차이에서가 아니라 사회조직의 차이에서 생긴다는 점, 진보는 언제나 어울림에 의해 촉발되었다가 언제나 불평등이 커짐으로써 퇴보로 바뀐다는 점, 지금도 현대 문명 속에 과거의 모든 문명을 파괴했던 원인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점, 정치적 민주주의만으로는 무정부 상태와 전제정치로 빠지게 된다는 점이 나타난다. / 19
✓ 하나하나 다 크게 공감한다. ‘진보는 어울림에 의해 촉발되고 불평등이 커져 퇴보로 바뀐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사분오열하다가 또 붙고 하는 게 역사의 걸음이다. 여기에 희망과 염세가 있다.
- 문제의 제기 -
지금까지 실망이 거듭된 것은 사실이다. 꼬리를 무는 발견과 발명도 휴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계층의 고된 일을 덜어 주지 않았고 빈민에게 생활의 여유를 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실패에는 이런 저런 다른 원인이 있었다고들 생각했기 때문에 새로운 믿음은 아직까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많은 줄 알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그 어려움이 반드시 극복될 것으로 믿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한 사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문명세계의 모든 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불황, 비자발적 실업, 자본의 낭비, 기업인의 자금 부족, 노동자 계층의 빈곤과 불안이다. … 이러한 현상은 정치제도나, 정부 재정이나, 인구밀도나, 사회조직에 관계없이 공통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 국한된 원인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 따라서 우리는 이 모든 현상의 밑바닥에 있는 어떤 공통의 원인을 찾아내어야만 한다. / 29-30
진보가 일정한 단계에 이른 곳마다 발생하는 사회 문제는 어느 지역의 특수한 사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진보 그 자체에 의해 발생됨을 알 수 있다. / 31
소위 물질적 진보라고 하는 추세는,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의 필수 요소를 기준으로 볼 때, 최하층의 상태를 개선해 주지 못한다. 아니 실은 최하층의 상태를 오히려 압박한다. … 마치 커다란 쐐기가 사회의 밑바닥이 아니라 그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분리점의 상층에 있는 사람들은 향상되지만 그 하층에 있는 사람들은 부서지고 만다.
신개척지가 기성 사회와 같은 상태로 진보해가는 과정에서는, 물질적 진보가 빈곤을 구제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빈곤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이처럼 진보에 빈곤이 수반하는 현상은 우리 시대의 큰 수수께끼이다. 이 핵심적인 사실로부터 세계를 괴롭히는 산업문제, 사회문제, 정치문제가 발생하며 또 정치, 종교, 교육이 이를 해결하려고 무진 애를 써도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 현대의 진보가 이룩하는 모든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고 사치를 조장하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차이를 더욱 뚜렷하게 한다면 이것은 진정한 진보라 할 수 없고 또 이러한 진보는 오래 가지도 못한다. … 빈곤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사람을 교육시켜 보았자 반항아만 기를 뿐이고, 사회적 불평등이 극심한 기초 위에 이론상 인간이 평등한 정치제도를 만들어 보았자 피라미드를 거꾸로 짓는 것과 같을 뿐이다. / 32-33
✓ 여기서 진보는 문명의 진보, 자본주의의 진보와 궤를 같이 한다. 세상이 좋아지는데 그 혜택을 최하층은 받지 못한다. 이는 세계 공통적 현상이다. 이 문제 의식은 자본주의가 현재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한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사실 현대에 와서 이 문제는 명확해졌다. 2008년 금융위기가 최근에 한번 더 증명하기도 했다. 모두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사회를 운행하는 조타는 자본주의 방식으로 이뤄진다.
✓ 거듭되는 진보의 실망 속에 사람들은 아Q처럼 정신승리를 하기도 하고 언젠가 중산층이라는 배에 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실망감을 갖다 보면 발전하지 못한다 여겨 빈곤의 문제, 서로의 사정에 무심하고 가차없어지기도 한다. 헨리 조지가 문제를 품은 이후로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 빈곤층에 교육을 해봤자 반항만 키운다는 말은 다소 과격하지만 일리가 있다고 본다. 무정부주의자는 그런 거꾸로 된 피라미드가 가능할 리 없다는 인식과 절감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나 역시 빈곤층에 가까운 서민으로서, 대학원까지 교육을 받았고, 어떤 면에선 남들보다 사회구조적 문제, 정치경제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에 대해 많이 공부해왔다. 그러나 머리가 무거워질수록 그람시의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한다’는 말을 되뇌이게 된다. 여기에 저항하고자 하는 마음까지 식어들었다. 아무리 대안과 희망을 희구해도 변하지 않는 공고한 자본주의 카르텔이 있다. 경쟁사회는 세이렌처럼 좁은 틈으로 달려오라고 말한다. 주변을 보지 말고서. 주변을 보다간 점점 자조하고 낙담하게 된다. 세이렌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 귀를 틀어막으려 해도 방향을 상실한 배 위에 있다. 언제 가라앉을지 모르는 망망대해 위해. 아프게 절감되는 부분이다.
- 제1권 임금과 자본 -
제1장 현재의 임금학설 ― 그 불충분성
모든 경제학 추론에서 확실히 해야 하는 근본적인 진리는 고도의 선진사회도 초기 사회의 발전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순한 사회에서 명백히 나타나는 어떤 원리는, 분업이나 정교한 도구와 수단을 사용하여 형성된 복잡한 사회에서도 - 다소 덜 분명하게 보일 수는 있어도 - 원리 자체가 타당하지 않거나 반대의 내용을 갖는 것은 아니다. … 즉,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자연으로부터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또 사회의 모든 생산은 각 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모두가 협동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각자가 자기 노력에 대해 받는 보상은 원시인이 그랬던 것과 같이 노력의 결과로 자연으로부터 얻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각자는 자신의 특정한 힘을 사용하여 자신의 특정한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즉, 각자의 보수는 자신이 실제로 생산한 것이라는 말이다. 어느 사람이 나물을 캐어 사슴고기와 교환한다면 실제로 사슴고기를 직접 생산한 것과 다름없다. … 버는 것은 만드는 것이다. … 임금이란 노동이 벌어들인 것 또는 노동이 생산한 것이지 자본의 일부를 미리 받는 것이 아니다. / 48-49
✓ 평소 ‘멍 때리는 시간’도 생산적이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내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자연에게서 얻어지는 효용에 다양한 개인의 노력 덕이라는 맥락이 그렇다. 우리는 ‘남의 돈 버는 거 쉽지 않다’는 말을 곧잘 한다. 사실 그건 ‘남의 돈’이 아니라 자기의 당당한 몫이다. 어쩌면, 대개의 경우 부당하게 적게 청구된 몫이기도 하다. 인간의 지식과 능력은 자본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과는 잘 구별해야 한다. 어떤 생산에 있어 정당한 몫을 받는 것이 ‘임금’이지 그것이 자본을 쪼개 제공하는 대가가 아니라는 것. 신석기 시대를 상상하면 굉장히 쉬운 등가 개념인데, 왜곡된 자본주의사회의 익숙함 셈범 때문에 헷갈린다.
- 제2장 용어의 정의 -
‘임금’은 더 넓은 의미로서 인간의 노동에 대한 모든 대가를 의미한다. / 53
상식적인 자본 개념은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한 부이다. / 58
노동이라는 용어는 모든 인적 노력을 포함한다. / 59
자본은 부의 일부분이며, 부 중에서 생산을 지원하는 데 배정되는 부만을 의미한다. / 62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부의 품목은 그 자체로서 부, 사용 중인 부, 생산 과정에 투입된 부인지 여부를 막론하고 자본이다. / 67
✓ 이해하기 어렵다. 임금은 노동에 대한 보다 폭 넓은 대가이며 자본이란 부를 얻기 위한 부이다. 즉, 생산을 얻어내는 데 쓰이는 부를 말한다.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부는 자본이다.
다시 말하면, 임금은 자본의 일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본은 부를 창출하기 위한 수단이며, 임금은 모든 노동의 대가이고 노동은 생산과 같은 개념이므로 부에서 임금이 제공되어야 한다. 성과이익공유제나 초과이익공유제와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될까. 물론 이보다 더 나아간 개념이어야 하겠지만, ‘자본’ 내에서 임금의 한도를 정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자본이 이룬 부에서 모든 노동의 대가인 ‘임금’이 책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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