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念頭

do not judge me!

do not judge me!

 

아침부터 참치김치찌개를 거나하게 먹었다. 점심은 웬만하면 집에 가서 가볍게 먹을 요량이었다. 11시께 ㅅㅁ감독님께 의미 없는 이모티콘이 하나 왔다. 점심을 같이 하자는 것 같아 내키지 않으면서도 "점심 같이 드실래요?"라고 답을 했다.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식사콜링이었다. 그러나 땜빵이었다. 원래 셋이 먹는 자리에 한 사람이 빠지고 남은 두 사람이 남녀라 내가 끼는 형세였다.(순전히 내 추측이다) 그 한 사람은 ㅈㅎ선배였다. 선배와는 어제 오후에 이야기를 많이 해서 사실 크게 그 자리가 끌리지 않았다. 근황을 다 이야기해서 더 할 얘기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보통 나는 식사콜링을 마다하지 않는 편이다. 식사 시간 때마다 외롭기 때문이다. 새로운 부서로 발령이 난 후 혼자 먹고 혼자 일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안 그래도 군중 속의 고독을 민감하게 느끼는 성향인데, 상황마저 이렇게 됐다. 지나고 보니, 결국은 내 찰나의, 나약한 외로움이 날 더 외롭게 만든 것 같다. 훗날 외로울 때 내 거절이 불러올 아쉬움이 염려되었던 것이다. 외로운 순간에 지난날의 거절들은 모두 '이유 찾기'일 뿐인데.

 

첫 출발은 좋았다. 비오는 운치에 좋아하는 쌀국수를 먹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어제 하던 얘기에서 넘어왔다. 유튜브 이야기였다. 새로운 내 업무다. 선배는 문득, "ㅎㅈ씨는 유튜브를 정말 안 본 것 같다. 그렇게 안 봤을지 몰랐다. 놀랐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나올 텐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겠느냐."라는 말을 띄웠다. 솔직하게 그렇다고 답했다. 유튜브에 대한 떠다니는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개인 유튜버가 아니라 공익적 조직의 유튜버로서 남들 다하는 것 하고 싶지 않다. 의미를 재미와 함께 담아내고 싶다는 게 요였다. 대화가 오가면서 선배는 내 말을 조금씩 오해하고 또 나를 조금씩 판단했다. 나는 조금은 참아내다가 항변을 하다가 그냥 말아버렸다.

 

기시감이 느껴졌다. 선배는 첫 만남부터 "ㅎㅈ씨는 ~~~한 사람 같아요"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 말이 참 싫었다. 나를 잘 알지 못하면서 규정하고, 또 훈계하는 말들. 아주 은근해서 바로 받아칠 수 없는, 너무 솔직한 공격이었다. 어제도 내가 만든 콘텐츠를 보면서 "스태프들이 정말 고생했겠다"라는 말을 했다. 욕심 부리지 말라, 열정이 과한 리더는 스태프들을 힘들게 한다라며 좋은 제작자가 되세요, 했던 말들이 스쳐갔다.

 

하나하나 다 복기할 수도 없지만, 순간순간, 계속해서 기분이 나빴다. 그 이후로 계속 우울하다. 누군가가 나를 좋지 않게 오해하고 있다는 것, 면전에서 '맥이듯?' 은근한 말로 조언이랍시고 늘어놓는 것. 그 상황 자체를 떠올릴수록 불쾌했다. 소통의 단절이었다. 선배는 공감보다 계속해서 나를 판단했다. 소리치고 싶었다. "don't judge me!!!!"

 

타산지석삼아, 누군가를 절대 판단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속으론 이런 성향의 사람이구나 생각할 수 있어도 단정짓는 말로 선을 넘진 말아야겠다 싶었다. 생각 끝에, 다시는 ㅈㅎ선배와 식사자리를 같이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회피'였다. 따뜻한 사람이지만 나를 안 좋게 생각하는, 게다가 사상적 코드도 안 맞는데 굳이 자리를 함께하면서 마음 상하기 싫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런 선택은 결국 '도망'일 수 있다. 이렇게 마음 먹고도 또 '외로움'에 져 식사도 하고 또 내 속을 다 보이고, 판단받고 상처받을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숱하게 경험해온 내나약함이다.

 

그래서 이번엔, '외로움에 지지 말자'는 좀 더 근본적인 생각을 꺼내보았다. 외롭다고 'yes person'이 되지 말자는 것. 마음 약한 나는 또 흔들릴 테니 독하게 다이어트를 해서 그 모든 식사자리를 차단하자는 극단적 생각까지 했다. (사실 다이어트는 필요하긴 하다. 다음 병원 검진이 벌써 한 달 앞이기에ㅠ)

 

결론이 안 난다. 어쨌든, ㅈㅎ선배와의 자리는 피하고, 내 얘기를 굳이 징징거리며 여기저기 하지 말고, (속을 보이지 말며), 말을 앞세우기보다 결과물로 말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건 내가 정말 고쳐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말'로 이미 했다고 여기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 말이다. 여러모로 기분이... 더러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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