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줍을 했다. 아 이걸 냥줍이라 해야 하나. 아픈 길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갔다가 집에 두고 약을 먹이고 있다. 곧 수술도 해야 한다. 치료비가 많이 깨질 예정이다.
사실 이 녀석은 내가 돌보던 녀석도 아니다. 오히려 침입자다. 회사 뒷마당에서 돌보는 고양이가 두 마리가 있는데 이 두 냥이의 주거지를 호시탐탐 노리던 녀석이었다. 발정기라 자주 눈에 띄나 했는데 아파서, 밥을 주던 곳이 자리를 치워서, 추워서 찾아왔던 거였다. 자리를 꿰차고 밥을 훔쳐먹으면서 애교도 없고 홍길동처럼 치고 빠지는 녀석은 내게 그저 웃기고 뻔뻔한 캐릭터였다. 그런데 사실 이 녀석은 밥자리를 잃고 살기 위해 눈에 띄었고, 혹독한 길 생활에 죽음의 문턱에 이른 상황이었다. 야위어가고 더러워지는 녀석의 몰골을 보면서 최근에야 알게 됐다.
치료비가 적진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100단위로 뛸 줄은 몰랐다. 당황스러웠지만 치료비보다 심각한 녀석의 상태에 더 놀랐다. 그래서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비용이 얼마건 치료가 급하고, 너무 늦게 데려온 게 미안했다. 비용을 들이는 건 크게 고민이 되지 않았다. 다만, 평생 이 녀석과 함께 살아야 하나 싶어 막막해졌다. 차후 내가 맡아야 할지도 모르는 냥이가 두 마리나 본가에 있고, 지금 집은 반려동물 금지에,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배치한 집 인테리어에, 깔끔 떠는 생활 습관에, 출장이 잦은 업무 환경에... 모든 것이 걱정됐다.
결론적으론, 같이 살지 않아도 된다. 고양이 전문가에게 소상히 스토리와 녀석의 전사에 대해 밝힌 바에 의하면 아직까지의 결론은 그렇다. 원래 사람 손을 타면서 길에서 살던 아이라 치료 후에 밥자리와 잘자리만 준다면 방사도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여의치 않을 수도 있지만, 여차 하면 입양을 보내도 되니까. (물론 과거 파양의 경험으로 많이 두렵다ㅠ)
그보다, 최근의 냥줍 사건에서 의아했던 건 주변 사람들의 우려다. 특히 치료비 액수, 모금 계획을 듣고는 내 행동을 (약하게) 나무라거나 핀잔을 던지는 반응들에. 누구에게도 돈을 좀 보태 달라 말하지 않았지만 동기 둘을 제외하곤 모두가 이 이슈 자체에 대해 부담을 느꼈다. 솔직히,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 나를 무모하게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간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것 같았다. 아파서 고통받는 고양이를 보고, 그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간 것이 그렇게 현실적이지 못한 아둔하고 즉흥적인 선택인가. 나는 다시 길에서 그 아픈 냥이를 본 상황이 되도 치료비를 알고 있어도 병원에 그 녀석을 데려갔을 거다. 딱히 내가 선하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순간의 내 판단이 그럴 거라는 걸 안다. 물론 그 심리에 대해선 십분 헤아릴 수 있다. 내 상황에 깊이 공감을 하면 무게를 같이 지어야 할 테고, 같이 판단해서 행동한 게 아닌데 삥뜯기는 기분일 수도 있고, 이러저러한 주머니사정에 피치못할 사정에, 뭐 여러 입장이 있을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뭐랄까 응원하는, 격려하는 말보다 "왜 그랬어?"라는 현실적 조언이 달갑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길에서 냥이를 보고 병원에 데려가는 데 주저함이 없던 것처럼 그들의 말 한마디 반응들 표정들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일 거라 생각한다. 사실 부담스럽지. 잘 모르는 길냥이의 치료비 이야기는 듣는 자체로 부담이기에,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그런 말들이 나온 거라, 아니면 그냥 그 순간의 판단과 감상 조언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제 크게 생각하지 않고, 혼자 짊어지려 한다. 왜 좋은 일을 하고도 혀차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좋은 일을 하고도 영 기분이 구리긴(?) 싫다. 잘난 척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내 선행을 알아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 고양이 고생 많이 했겠다' '돈이 많이 들겠다 어떡하니'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어? 그렇구나' '소액(진짜 소액 만원 이만원)이지만 나도 보탤게' 이런 공감의 말들이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쓰고 보니 자기중심적인 것도 같지만.
자신의 평판이나 이해와 상관 없이, 공감하는, 격려하는 말을 더 나눌 수 있는 그런 대화를 기대했던 것 같다. 최근 들어 사내 관계를 너무 진솔하게 진실되게 '오해'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 회사는 그런 마음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일을 하는 곳이었던 거지. 일.
여러모로 씁쓸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발을 빼고 회피하는 사람들을 보는 건. 모두가 내 맘 같지 않음을 확인하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