念頭

코스프레

텅빈풍경 2019. 3. 31. 16:39

다큐멘터리 감독 코스프레 하던 시절의 얘기다. 6mm 카메라를 들고 아무 지하철 출구로 나와 보이는 것을 찍었다. 그날은 2호선 어느 역이었다. 대형마트의 변칙 입점으로 영세상인들의 시위가 연잇는 때였다. 출구를 돌아나오니 길 건너 커다란 마트가 보였고 눈앞에 할머니 한 분이 쭈그려앉아 도라지를 깎고 있었다. 허름한 몸배바지에 낡은 모자를 쓴 할머니를 휘휘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길바닥에 질펀하게 주저앉아 할머니께 이런저런 말을 붙였다.

"저기 저 마트 들어오는 거 아셨어요?" "아무래도 할머니 행상에도 영향이 갈 텐데 어떡해요"
먹고사는 것에 해탈이라도 하신 걸까. 시위하는 사람들과 달리, 할머니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가 흐르다 내가 아드님의 대학 후배라는 공통 화제를 발견하자 마침내 할머니는 밝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마스크를 벗고 자식자랑을 시작하시는데 빨간 립스틱이 빛난다. 할머니의 얼굴은 생각보다 고왔다. 사연인즉슨, 할머니는 과천의 신축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강원도 시골에서 흙묻은 도라지를 받아 깎아 팔고 있었다. 도라지 파는 일은 소일거리로, 수입은 꽤 짭짤한 편이라 마트가 들어오는 것엔 관심이 없다고 하셨다. 도시 생활이 갑갑할 때 일부러 헌 옷을 입고 나오는데 사람들이 돈을 더 얹어줄 때도 있다며 소소한 재미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카메라를 쥔 손에 힘이 빠졌다.

그날 들었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드라마 속 서민으로 표현되는 억척소녀가 알고 보니 브랜드 옷을 여러 겹 레이어드해 입은 걸 알게 되었을 때의 헛헛함이랄까. 매일같이 알바를 뛰면서 생활비, 학비 걱정 안 해 본 적 없는 내게 할머니의 취미생활은 상상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나에겐 실존인 '가난'이 누군가에겐 '코스프레'일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취향이니까 존중’한다기엔 누군가에겐 모멸감이 들 수 있는 문제다. 실제 삶에서 ‘가난’은 개인의 존엄을 갉아먹는 기제다. 가난한 이들은 살기 위해 내밀한 속을 까보여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후원을 받기 위해 앙상한 뼈와 누추한 집을 드러내야 한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급식비를 지원받기 위해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 공공연히 손을 들어 표했어야 했다. 싸게 산 소셜커머스 쿠폰으로 미용실에 가면 대우가 다르듯, 현대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대우’가 달라진다. 

고로, 가난은 가난하지 않은 이에게만 향유될 수 있다. 가난이 낭만화할 때 실제의 가난은 숨겨지기 마련이다. 호화 명품 브랜드 '골든구스'에서 출시된 테이프를 붙이고 낡은 데를 덧댄듯 연출한 빈티지 운동화는 수백만 원을 호가할 때,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운동화 밑창을 떼어낼 수밖에 없는 학생의 사연은 한참 뒤에나 알려졌다. 도시미관을 헤친다고 판잣집을 일괄 철거하는 일이 국가행사가 있을 때마다 벌어졌다.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하는 게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을 대접하는 방식이다. 이런 사회에서 가난은 사랑, 기침과 함께 숨길 수 없어 가까스로 토해내고 서둘러 닦아내는, 아프고 쓰린 것이다. 그래서 가난은 가능하면 숨기고 싶은 것이다. 바우처로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은 공짜밥이 부끄러워 그마저도 쓰지 않는다.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위한 복지카드 예산이 매년 남는 건 그런 선별적 복지의 폐해일지 모른다.

가난을 연출하는 할머니와의 만남 이후로 ‘청백리’라는 말을 믿지 않게 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안분지족’조차 빈자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킨포크, 단샤리, 휘게 같은 소탈한 삶의 방식이 유행하고 sns에 전시되는 동안 진짜 ‘가난의 문제’는 얼굴을 내보일 곳을 잃어버린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돈이 궁할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sns를 끊는 일이었다. 가난은 청춘의 한때도 아니고, 무능력함의 상징도 아니다. 가난이 낭만이라면, 애초에 수저론은 나오지 않았을 테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사서 고생해라’라는 말을 고깝게 듣지도 않을 것이다. 가난이 코스프레의 한 형식으로 찬탈될수록, 진짜 가난은 엄정한 평가를 받고, 그 가난의 내역을 증명해야 한다. 사회복지기금의 부정수혜자가 많을수록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깐깐한 심사와 지난한 대기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할머니 이후로도 '가난'을 '코스프레'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수억 수조의 국가돈을 사인에게 맡기면서 낡은 가죽가방을 들고 다니던 전 대통령, 자기 딸을 '계약직'으로 밀어넣어 불법채용 의심을 피한 국회의원, 한부모 자녀라며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국제중에 아이를 보낸 재벌까지. '가난'은 지금도 계속해서 코스프레되고 있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는 한국사회에서 소득불평등의 문제를 가리고 있다. 경제규모 10위, 소득격차 2위(OECD)라는 지표는 우리 사회가 억만 장자(돈)와 억만 빈자(사람)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주는데도, 대다수는 자신이 가난하지 않다고 믿고, 가난하지 않으려 애쓴다. 가난을 낭만화하는 동시에 터부시하는 이중성을 본다. 모두가 가난을 증명하지 않고도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가난의 모습을 찬탈하지 않는다면, 빈자의 수치심과 외로움도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때야말로 우리도 북유럽처럼 ‘자발적 가난’을 삶의 한 방식으로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