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책 : 고민하는 힘 / 개미제국의 발견 / 타자와 나, 숨겨진 진실 / 침묵의 봄
고민하는 힘 / 강상중 / 사계절 (2019.02.15)
“‘자기중심주의자’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적고 ‘자기중심주의자’라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자기중심주의자’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지만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대개 ‘타자’의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때문이겠지요. “
재일교포 2세인 저자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준 통찰을 토대로 삶에 대해 고민할 주제를 ‘던져주는’ 책이다. 말 그대로 ‘던진다’. ‘고민하는 힘’의 효용에 대해 소세키나 베버를 통해 설득하는 것도 아니고 몇 가지 굵직한 카테고리 ‘죽음’ ‘사랑’ ‘노동’ 등에 대해서 그들의 레퍼런스를 차용해 고민해보면 어떠냐 묻는다. 조금 진지한 사람의 일기를 읽는 느낌인데 그 일기마저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않고, 고민의 주제도 지나치게 거시적이고 피상적이다. 알맹이가 진지한 것 같긴 한데, 나 진지하다라고만 어필할 뿐 속얘기를 당췌 꺼내놓지도 설명하지도 않으니 읽으나 마나다. 진짜 아예 고민 없이 살던 사람이 책을 읽으면 고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는 될 수 있겠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 자체를 너무 좋아해서 같은 취향의 동지가 필요하다면 작은 위안이 되기도 하겠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매력을 느낄 수도 없었으니 이 책의 목적은 대체 뭔가 싶기도 하다. 이럴 거면 청소년 책이나 동화로 쓰지라는 생각도 든다. 결론적으로 ‘비추’.
개미제국의 발견 / 최재천 / 사이언스북스 (2019.02.10)
“상대를 완전하게 알고 이해하면 반드시 사랑하게 된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일단 사랑하게 되면 그를 해치는 일이란 아무리 하라고 등을 떠밀어도 하지 못한다”
네이버 지서재에서 정재승이 추천책으로 올려둔 것을 기억했다 읽게 됐다. 과연 1순위로 추천할 만하다. 이 책은 개미에 대한 정보가 주된 내용인데, 개미 자체의 매력이 어마어마하다.
일단, 저자의 태도와 설명방식이 크게 마음에 든다. 최재천 교수는 동물의 순수함을 빗대어 인간을 비판하지도, 알 필요도 없는 학명을 들먹이며 정보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개미사회는 냉정하고 잔인한 인간사회와 닮은 점이 많다는 점이 설명되지만 과도한 의인화도 없다. 그저 개미 세계에 대해 독자를 “친절하게” 초대한다. 정말 친절하다. 과학책은 이렇게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에 1000단어로 과학을 설명한다는 <친절한 과학 그림책>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과학 책이 대중적이지 못하고 현학적인 것을 비판하면서 쉽게 설명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그 책은 일러스트만 화려할 뿐 재밌지도 쉽지도 않았다. 그림책이라기보다 ‘사전’에 가까웠고 자기만 알아볼 수 있게 쉽게 써둔 내용 같았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정말 쉽고 재밌다!
외재적 비평은 이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면, 개미 사회는 정말 흥미롭다. 인간과 닮아서가 아니라 인간보다 앞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보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왔고 전쟁해왔고, 생존을 위해서 더 발전적 이타심을 보이는 그들의 유연성이란...! 발끝에 채이는 미물이라 혹자는 여길지 모르지만 정말 사회생활의 끝판왕인 것 같다. 타 종과 함께 군락을 만드는 여왕개미의 정치질, 이타적 일개미의 다른 면모, 아즈텍 개미의 전투력, 식물과 다른 곤충과 공생하고 또 가끔은 이용하는 여러 개미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 재밌다.
재미 끝엔 겸허한 마음도 든다. 이 책을 읽는 가운데 가장 큰 소산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운운하는 건 정말 가소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개미 찬양이 아니다. 몰랐던 개미 세계를 만나면서 얼마나 인간 중심적으로 살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인간은 생태계에 미치는 공헌도에 비해 지나치게 생태계를 모르고 있다. 몰라서 그런 걸까.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고 이기적이다. 최재천은 글의 말미에 ’알면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제 개미를 보면 쉽게 지나치지 못할 것 같다.
타자와 나, 숨겨진 진실 / 김웅권 / 연암서가 (2019.02.09)
“그러니까 자연의 생성 변화 혹은 차이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대립관계를 의식적으로 설정하지 않고는 의미의 생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 현상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지 않고 그것을 양극적 틀에 따라 인위적으로 바꾸는 작업에서 의미는 도래합니다.” p. 144
이 책은 너무나 매력적인 목차를 가지고 있다. 내용도 묵직하다. 거의 몇 페이지 걸러 생각해볼 주제가 나온다. 그러나 끝까지 읽지 못했다. 1/3 정도 정독하고 나머진 훑어 읽었다. 스타일이 촌스럽다. 여기서 스타일이란 설명의 방식이다. 아는 것 많고, 시대에 혜안을 가지고 있지만 약간은 나르시스트이면서 꼰대st인 ‘선비’ 같다고 해야 할까. 상호텍스트성이 너무나 좋은 책인데 지극히 안물안궁인 개인사로 행간을 채운다. ‘소통하는 글쓰기’ ‘트렌디한 글쓰기’에 대해 예상 못한 통찰과 반성을 준다는 점이 득이라면 득이다.
앞서 말했듯, 책의 내용은 좋다. 이원론적 대립에서 공존의 의미를 건져올리며 ‘타자’와 ‘나’를 결속한다. 사례들이 단순하게 환원되어 설명될 때도 있지만 빈자와 부자, 자연과 인간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대립항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속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인사이트를 준다. 일단은 더 읽기를 포기하고 감상을 남기지만, 꾹 참고 다시 한번 제대로 읽고 싶은 책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평소 반골기질이 강하고 꼰대 설명충 선생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면, 오글거리는 걸 세상 극혐한다면 다소 읽기 어려울 수 있다.
침묵의 봄 / 레이첼 카슨 / 에코리브르 (2019.02.08)
“우리 몸속에도 생태계가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아주 사소한 원인으로 엄청난 결과가 생겨난다. 원인과 결과가 별 관계없는 듯 보일 때가 많다. 상처 난 곳에서 한참 떨어진 어떤 곳에서 병의 징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회피해왔는지도 모르는 책, <침묵의 봄>을 드디어 읽었다. 내게는 생태학, 동물, 자연 이야기에 이끌리면서도 피하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이 있다. 생의 순리가 자연과 다를 바 없는 ‘인류’라 몰입이 되고, 존재 자체가 자연에겐 해가 되는 21세기의 ‘인간’이라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무위자연할 수 없는 문명을 맛본 사람이라 괴롭지만 결국 또 기본 원리는 같은 여러 생태계의 겹 혹은 겁에서 살아가는 유기체라 생태학은 내게 언제나 ‘언제나 불편한 진실’로 울림을 준다.
사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DDT와 살충제, 화학물질의 위험성은 우리가 미디어와 책을 통해 일상적으로 접하는 내용이다. 인이 박힌 얘기라 초반엔 이게 왜 환경 분야의 고전인가 의아하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읽어갈 무렵, 이 지겨운 환경오염의 공포이야기는 되풀이되고 실감되고 또 체화하지만 정작 변한 것은 없다는, ‘지루함’의 원인을 깨닫게 됐다. 여전히 우리는 작은 벌레를 혐오스럽고, 귀찺고, 우리가 먹을 것을 갉아 먹고, 상품가치가 떨어진다고 ‘방역’을 일삼는다. 조금 더 편리하기 위해서 기업은 미지의 화학물질을 남용, 오용하고 정부는 사람이 눈에 띄게 죽어나가야지만 뒷처리를 겨우 한다. 지난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그랬고, 도처에서 인간의 이기는 알게 모르게 업보로 돌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