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사회의 이기주의자들을 생각하며, 다소 불온한 상상
아이를 낳아도 되지 않는 세상
저출생이 심각해지면서 아기를 낳지 않는 건 이기적인 거라는 말들을 더러 본다. 나는 이 말에 공감이 잘 안 된다. 과거에는 안전한 피임약과 기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낳았다손치더라도 현재는 안 낳을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아이를 낳는 것이 더 이상 '운명'이나 '숙명'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아이 낳아 애국한다는 건 전근대적이다. 일단은 국가주의 자체의 강력함이 무너지는 지구촌(?) 사회인 데다, 기계문명으로 일자리도 사라지고, 환경은 오염되고 인간은 쓸모도 없고 해악이 되어가는 시점에 아이를 낳는 것은 과연 생태계에 좋기만 한 선택일까 의문이 든다. 한 생태학자가 지구가 살려면, 인류가 없어지면 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점점 사라져주는 게 그동안 해를 끼쳐온 지구촌 식구들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이런 생각은 히스토리채널에서 <지구가 사라지고 100년>(?) 이런 비슷한 제목의 다큐를 보고 확고해졌다. 처음에는 인류가 사라진 지구는 삭막하고 황폐하지만 지구 시간으로 따지자면 금세 아름다워지는 걸 보면서...
히스토리 채널 Life after people의 한 장면. 지구는 점점 좋아진다.
사진 출처 : nw1011.blog.me/10134569723
게다가 태어난 아이에게 이 세상이 좋을 거라는 확신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앞으로는 아기를 낳는 것이 이기적인 세상이 올 수 있다고 본다. 일단 태어나면 생은 스스로 끝내기가 참 어렵다. 하이데거였던가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고. 나 역시 가까운 죽음을 경험하고서도 가끔 실존적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를 크게 느낀다. 인간으로 살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도 물론 있지만 그것은 정말 찰나이다. 생은 기본적으로 고통이다. 이 세상의 불공평함과 부조리함은 쉽게 고쳐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깨닫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데, 언젠가 이 인식이 끝나버린다는 게 너무너무 서럽게 느껴진다.)
아이를 낳는 것이 비극의 확산인 것은 미래가 아닌 현 세대의 다른 공간에서도 발견된다. 거미보다 전쟁이 무섭다는 시리아의 아이들이 그렇고 기아와 극한노동에 허덕이는 빈국의 아이들이 그렇다. 물론 이미 태어난 생은 존엄하지만, 고통을 안겨줄 수밖에 없는 생이라면 아예 낳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지 않은가.
영화 <멜랑콜리아>에서 우울증 환자로 분하는 커스틴 던스트는 지구의 종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불안과 공포, 허무에 떠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편안한 그의 얼굴이 엔딩신을 장식한다. 그리고 종말의 순간 소행성은 너무도 아름답다. 나는 우울증환자는 아니다. 내 심리상태 때문이 아니라 진짜 아기를 낳는 것 자체가 '이기적인' 세상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조금 더 사상을 해본다면, 에어리언처럼 출산 자체가 산 자를 죽이는 끔찍한 바이러스가 당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 부성이든, 모성이든 인류애로도 감당 못할. 화학물질의 오남용으로 예기치 않은 죽음이 이어지는 걸 보면 이런 생각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싶다.
영화 멜랑콜리아의 엔딩 장면. 가운데가 커스틴 던스트.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gracerevenge/13635777
하지만 이런 얘기는 쉽게 꺼내기 어렵다. 한 번은 '저출생 문제 해결'이 주제인 토론에서 주제 자체에 반기를 든 적이 있다. 왜 꼭 저출생을 해결해야 하나요? 저출생의 상황에서 고령화하는 인간이 존엄을 지키며 살 방안을 생각하면 어떤가요? 꼭 인간과 출생을 경제지표와 산업인력으로 따져야 하나요?라고 의견을 말했다. 그때 엄청난 폭격을 받았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냐' '인간의 도리이자 본능이다' 등등. 어휴... 나는 우리 부모님을 존경하고 나를 위한 희생에 죄송하고 감사하다.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진심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가기 바란다. 그러나 그 반대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이기심'이라는 말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