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평론가가 본 사물과 예술 사이, 반이정의 <사물 판독기>
몇 년 전, KBS에서 일상의 사물을 인문학 관점으로 탐구하는 <다빈치노트>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안경, 만두, 연필 등의 소재로 한 시간가량 전문가와 연예인 패널이 대화를 나누는 구성이었다. 한 번 보면 스르륵 끝까지 보게 되는 프로그램이었으나 롱런하진 못했는데, ‘개념어 사전’이나 ‘십자말풀이’를 들춰볼 때처럼 있거나 없거나 찾아보게 되진 않는 무미건조함 탓이 크지 않을까 싶다.
오래전 사놓고 읽지 않았던 <사물 판독기>는 ‘미술평론가’가 썼다기에 구미가 당겼다. 신동엽의 시 <오렌지>처럼 대상을 관조하고 독창적 관계를 설명하는 ‘심미안’을 배워보고 싶었다. 목차에는 ‘색채론’ ‘키치’ 챕터도 있다. 책의 커버도 소장욕구가 들 정도로 눈길을 끈다. 단숨에 읽어나갔다.
책의 표지, 윤정미 사진가의 작품. 출처: 출판사 세미콜론 블로그
결론은, 소장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다시 읽지 않을 책은 도서관에 기부하거나 버리고 있다). 사진 한 장에, 소재에 대한 짧은 글이 실려 있는 구성은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다. 요즘 식으로 치면 미술평론가의 페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쭈~욱 보는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평론가 개인에 대한 호감이나 친분이 없다 보니 남의 일기장을 읽는 기분도 들었다. 결과적으로 평론가의 색다른 시선도 거의 느끼기 어려웠고, 거의가 소재에 대한 신변잡기와 감상의 나열이었다. 한 컷의 사진과 몇 줄의 글이 사유를 확장해주지 못해 아쉽다.
이 책의 출간이 5년이나 미뤄졌다는데 난 5년 뒤에나 읽었으니 10년의 세월의 결과 부딪히는 서술도 많았다. 여고생에 대한 욕망에 대해 써놓은 부분은 요즘 시대에 SNS에라도 올랐다면 비판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섹스 파트의 부분이 거의 그랬다. 분홍색으로 가득찬 어린아이가 담긴 사진을 보고 에로티시즘을 떠올린 부분은 보면선 더 읽고 싶지 않기도 했다. 과거에는 어쩌면 나 역시 남자들은 이런가 보다 하고 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시대가 많이 변하긴 했나 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좋았던 점을 꼽자면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읽은 <아날로그의 반격>은 이 책보다 심층적이었지만 미국 사회의 소비 변화를 기술한 책이라 찰떡같이 와 닿진 않아 아쉬웠던 터였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에 대한 기록은 그 이름을 불러내는 것만으로도 짠하고 그리운 느낌을 준다.
관계의 접속과 연결만큼 단절과 고립도 쉬운 시대에 사물에 마음을 주게 되어버린 것일까. 소비가 쉬운 세상에서 키덜트와 콜렉터가 전시품을 뽐내지만 한편에선 공유 서비스가 늘고 ‘미니멀리즘 열풍’에 매일 가져다버리기까지 한다. 미화된 기억으로 마음을 적실 때 일상의 사물은 좋은 매개체가 된다. 관계가 단절된 시대에 소중히 모은 한정판 피규어들은 헛헛함을 채운다. 어찌됐든 사물의 존재감은 모으거나, 버리거나 하면서 삶의 태도와 일상의 만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토막글은 <검정 비닐봉지>이었다. 검정 비닐봉지에 대한 어떤 사유를 해본 적이 없다. 몇년 전 드라마 <시그널>을 보면서 살해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것에 놀란 게 다였던 듯하다. <검정 비닐봉지>를 포함, 좋았던 몇 구절을 적어본다.
검정 비닐봉지 : 현대 소비생활의 부산물 검정 비닐봉지는 그 색이 상징하듯 죽음의 그림자를 연상시킵니다. 매장에서 집어든 유채색 상품의 광택을 집어삼키는 무채색의 은폐술이 일단 그렇지요. 도로, 가로수, 가옥, 거리 등에 전방위적으로 출몰하는 검정 비닐봉지는 자력이 아닌 바람에 실려 이동합니다. 방향 감각 없이 공중 부양하는 비닐봉지에서 유령 이미지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낮의 활기와 열광이 쓸고 간 새벽녘 도심은 음식물 찌꺼기를 담은 검정 비닐 더미와 그걸 찾아 헤매는 배회 고양이가 접수합니다. 소비문화의 끝자락에 남는 건 처치 곤란 상태로 수북이 쌓인 검정 비닐이기 십상입니다. 설혹 이들에게 제공되는 재기의 발판이래야 고작 ‘비공식’ 쓰레기봉투이며 때론 소화 못 한 토사물을 받아 내는 성가신 역할이지요. 이 정도는 그나마 나은 축이고요. 토막 살해의 증거물은 여지없이 검정 비닐봉지와 함께 발견됩니다. 구멍가게에서 선심으로 살포되기 때문에 검정 비닐봉지의 실존감은 더 실추됩니다. ‘있는 듯 없는’ 그야말로 유령이지요. 혹은 도시의 신종 검은 고양이인지도.
이어폰 : 우연히도 정자를 닮은 이어폰이 귓구멍에 정확히 도킹하면서 신세계가 열리는 이치도 생명 탄생의 원초적 절차와 흡사하다고 우길 수 있죠.
공CD : 이들의 애처로움은 한 번 저장된 그 어떤 데이터도 대체로 다시 열어 보지 않는다는 진실 속에서 찾을 수 있지요. 저장이 곧 매장이랄까요?
경호원 : 단 한 명의 남다른 인생을 수호하러 100명의 경호 직원이 동원되는 것에 비해, 평균인의 안전은 100가구를 단 한 명(아파트 경비)이 지켜내야 하죠.
공중화장실 : 볼일 볼 적마다 마주 봐야 하는 ‘오늘의 명언’만큼은 그만 봤으면 해요. 심오한 철학 앞에 나오던 게 들어가거든요.
CCTV : CCTV는 인간 육안의 위상과 용도가 재조정 중인 현실도 보여줍니다. 실세계를 응시하던 인류의 눈은 모니터를 판독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으니까요,
책 내용 자체보다도 이 책의 기록 방식이 내겐 더 큰 의미였다. SNS 업로드와 사진 찍기를 귀찮아하는데 나만의 사물 판독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중간중간 만난 노순택 사진가의 사진이 좋았다. 기회가 되면 전시에 가보고 싶다.
메모...
- 노변에 버려진 코끼리 인형과 마주친 어느 겨울날, 다만 솜뭉치인 인형에게서 유기동물의 애처로움을 느꼈습니다. 행인 중에도 가던 길을 멈추고 인형 주변을 서성대면서 가여운 시선을 던지는 이들이 여럿 보였습니다.
- 윤석남 <1025> 2008. 보호소에 수용된 유기동물의 수 1025마리를 그대로 따온 것
- 마하트마 간디 “한 나라의 위대성과 도덕성은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 복잡성을 피하고 단순성을 꾀할 때의 지혜는 최적의 공간성을 지향하는 건축가의 미학과 일치합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단순성을 현대성의 속성이라고 봤고 아돌프 로스는 단순함을 저해하는 장식을 범죄로 규정했으며, 미스 반 데 로에도 “적을수록 좋다”는 경구를 남겼죠. 이론가 크라카우어는 대중 장식을 저속하고 기계적이라고 조롱했습니다. 필립 스탁이 밝힌 디자인 미학도 “최소한의 의미를 가지고 그 의무를 다하는” 제품이었죠. ‘디테일을 최대로 키우는’ HD 시대를 넘어 이제 3D를 논하는 시대이지만 품격 있는 미감은 미니멀리즘의 몫입니다.
- 19세기엔 남자아이에게 분홍색을, 여자아이에겐 파란색을 입히는 게 의상 코디의 정석이었답니다. 붉은 계열이 남성적 과단성을, 파란 계열이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파란 외투를 뜻했기 때문이라고.